걸작 그리고 걸작 8. 필경사 바틀비 그리고 속 생의 한가운데
[꼼꼼읽기]에디터의 책장2011-11-07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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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더블 더블 보너스로 걸작 한편이 더 나갑니다.
즐겁게 읽어주세요.
두번째 에디터님은 <네가 있어준다면>, <로우보이>, <금지된 정열>를 편집하시 문학동네 해외 1팀의 김경미님입니다.
김경미 에디터님의 마음을 사로잡은 책 지금 소개드립니다.
순수했던 시절의 꿈을 돌이키게 해준 『필경사 바틀비』
가까운 이들을 만나면 밥 한 끼 사듯 책을 선물합니다. 책을 편집하다가도 책을 읽다가도 그 책을 건네면 기뻐할 이가 문득 떠오릅니다. 그 애라면 분명 이 책을 좋아해줄 거야, 라구요.
『필경사 바틀비』를 편집할 때도 한 친구가 떠올랐습니다. 사회과학서들에는 익숙하지만, 문학서는 거의 읽은 게 없다던 대학생 친구였습니다.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공부하고 있던 그 친구라면, 허먼 멜빌이 ‘바틀비’라는 기이한 인물로 말하려 했던 고뇌를 알아줄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사회과학과는 다른 방식이지만 문학 또한 치열하게 사회에 말을 건넨다는 걸 알아줬으면 했습니다.
『필경사 바틀비』는 20세기 초, 한창 성장하던 미국 금융경제의 심장부 월스트리트가 무대입니다. 그곳에서 평탄하게 일해온 변호사 ‘나’ 앞에 기이한 필경사 바틀비가 나타납니다. 그저 말수가 적고 외로운 사람이겠거니 생각했던 바틀비가 출근 사흘째부터 고용주인 ‘나’의 지시를 거부하면서 사건은 시작됩니다.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바틀비는 이 한마디를 태연하게 내뱉었을 뿐입니다. 하지만 월스트리트라는 잔잔한 호수에 커다란 파문을 일으키죠.
어쩌면 저항이란 그런 작은 것일지 모릅니다. 모두가 당연시하는 것에 의문을 갖고 그것을 “안 하는 편을 택”해보는 것. 그리고 끝내는 ‘지금 내가 살아 있는 것’조차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 것. 그런 사람들이 하나 둘 셋 모이는 것. 거기서 변화의 싹이 트는 게 아닐까요.
그런 제 마음이 멜빌의 마음과 함께 그 친구에게 잘 전해졌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제가 『필경사 바틀비』를 건네고 일주일 후, 그 친구는 말없이 ‘리포트’를 ‘제출’했습니다. 책을 선물하고 리포트를 받기는 처음이라 어찌나 당황했는지요. 그리고 뭉클했습니다. 자신이 공부하는 『자본론』이 『필경사 바틀비』와 어떻게 이어지는지, 나름의 답을 찾기 위해 책장을 넘기고 또 넘기는 그 친구의 모습이 눈에 선했으니까요. 그냥 한 번 읽고 “아, 재밌었어”로 끝내지 않고 한 구절 한 구절 꼭꼭 씹으며 읽어준 것이 편집자로서 얼마나 기뻤는지요. 허먼 멜빌이 알았다면 저보다 더했을 겁니다.
그날 저는 “아, 내가 편집자가 된 건, 이런 걸 꿈꿔서였지” 하고 돌이켜보았습니다. 사람이 책을 만나 생각의 씨앗을 품고, 사람과 사람이 책으로 만나 정을 나누는 일들이 좋아서 편집자가 된 기억을요.
여고 시절 우리들의 우상 ‘니나’의 뒷이야기 『속 생의 한가운데』 학창 시절 나름 ‘문학소녀’였다고 자부하는 여자분들이라면 한번쯤 루이제 린저의 『생의 한가운데』를 읽지 않았을까요. 그 책 속의 ‘니나’는 치열하게 생의 의미를 물으며 살아가는 강인한 여성의 아이콘이었으니까요. 저 또한 니나의 말들에 밑줄을 그으며 읽고 또 읽었습니다.
그러니 시간이 흘러 편집자가 된 후 별생각 없이 들어간 헌책방에서 『속 생의 한가운데』를 발견했을 땐 “심봤다!”라고 외칠 뻔했습니다. 그런 책이 있는 줄도 몰랐거든요. 그땐 이미 절판돼서 구하기도 쉽지 않았으니 로또에 당첨된 거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생의 한가운데』의 니나가 치기 어린 것 같아 좀 부담스러워진 후, 『속 생의 한가운데』에서 좀 더 나이 들고 세파를 겪으며 속 깊어진 니나를 만나는 건, 십 년 만에 옛 친구를 만나는 기분이었습니다. 더구나 소설은 처음부터 끝까지 니나가 지인들에게 쓴 편지글로만 이루어졌으니 더욱 그랬죠.
그 책 덕분에 저는 새 친구도 얻었습니다. 블로그에 책에 대한 감상을 올렸는데 어떤 분한테서 꼭 보고 싶은데 구하기가 쉽지 않다고 빌려줄 수 없겠느냐 쪽지가 왔습니다. 저는 제본을 해서 선물로 보내드렸습니다. 마침 동갑내기 여자분이어서 결국 그 일을 계기로 이제는 가까운 친구가 되었습니다.
제게는 그리운 추억과 아끼는 인연으로 더욱 특별한 이 책을 서점에서 다시 보게 되면 좋겠습니다.
![]() Wirtten by 김경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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