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다른 두 형제가 자일 하나에 몸을 묶고 촐라체를 오른다. 형제는 각자 마음 깊은 곳에 무거운 짐을 지고 모두가 떠나간 12월의 히말라야에서 불가능해 보이는 도전을 한다.
처음 책을 폈을 땐 다소 부담스러웠다. 일단 어려운 등반 용어들이 많이 나왔고 주석 또한 밑이 아니라 맨 뒤에 모아놓아 들척거리며 읽다말고 읽다말고 그랬었다.
히말라야에서 우연히 만난 정우진에게 자신들의 베이스캠프를 지켜달라고 부탁한 뒤 간단한 장비를챙겨 촐라체로 오른다 10년 전 추락하는 선배의 죽음을 목격한 이후 처음 등반하는 상민과 죽어가는 아버지에게 빚 독촉을 하던 사람을 칼로 찌르고 도망쳐온 영교.
형제가 하나의 줄에 의지하여 산을 탄다. 자칫 한발자국만 잘못 내딛게 되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인것이다. 이때 동생 영교가 크레바스로 추락하는데 형인 상민은 이런 상황에서는 로프를 끊어야 자신이 살수 있다는것을 알고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다. 하지말 로프는 끊어져 버리고 동생 영교는 밑으로 추락하지만 다행이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이 일로 인해 동생은 다리를 다치고 형제는 조난을 당한다 하지말 형제는 포기하지 않는다.
형제가 살아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은 형제가 서로를 위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촐라체는 형제가 각자 자기 입장에서 생각하고 그려내는 모습들을 동시 화면처럼 보여준다. 정상의 공허를 맛보고 내려오는 동안 산의 노여움처럼 다가온 사고에서도 각자 영교는 영교 입장에서 형에 대한 증오와 크레바스, 끊어버린 로프를 그려내고, 상민은 추락했던 동생 영교의 가망없는 희망을, 로프 앞에서 망설이다 홀가분하게 칼을 버린 모습처럼..
작가가 이야기 초반에 이야기하고 있듯 촐라체를 오르는 것은 꿈을 잃고 어느 방향으로 발을 내딛어야 할지 모르는 젊은이들에게 하나의 경종을 울릴 것이다. 책을 읽고서 무수히 많은 촐라체들과 마주한 내 자신이 떠올랐다 때론 충분히 견딜 수 있는 일임에도 힘들다고 투정부렸던.. 내 앞을 가로막았던 촐라체..나는 상민과 영교처럼 촐라체의 빙벽에 피켈을 박고 올라갈 자신이 없다. 단지 가혹한 생존의 갈림길에서 무사히 돌아온 상민과 영교를 보며 끝이 보이지 않는 촐라체를 넘어선 그들이, 함께 그길을 걸은 듯 가슴벅찬 감동을 느낀다. 이들의 무모하기만 해 보이는 이 도전으로 하여금 등지고 싶은 세상 속을 더 힘차게 살아나갈 수 있는 용기가 생기게 해 준 도전이라면 그 어느것보다고 더욱 값진 도전이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