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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위일체론을 다시 보다

2010-01-18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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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의 별
저자 신성현
출판사 리본 | 2009.09.25
정가 11,800 판매가 10,620 원 ( 10% +10%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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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위일체론을 다시보다. 이책은 커다란 다윗의별 표지그림과는 달리 삼위일체론 즉 하나님에 대한 책이다. 사실 삼위일체론에 대한 이야긴 누구의 신비영역이라고 치부해버리고 덮은 순간 하나님에 대한 바른이해의 창을 막았다. 그런 결과 요즘 이단들은 그냥 몰라서이기도 하지만, 아주 사이비한 집단들은 마치 자기가 성삼위중 하나라는 식의 해괴한 논리를 하게 되는 배경이 되기도 한다.


그렇듯 제대로 가르키고 배워야할 성삼위하나님에 대해 나름의 공부와 연구를 통해 글쓴이가 쓴 내용들은 정확성에 관계없이, 진리에 가까운가하는 통찰에 관계없이 의미가 있다. 그리고 자기가 알고자하는 하나님을 배우고 찾고 정리한 저자나름의 노력에 대해 박수를 보내고 싶다.


그러나 저자가 잘못이해하고 잘못아는게 있다. 내가 신학전공자도 소위 가운입는 목회자의 길에 선자도 아니지만 내가 알고 이해하는 하나님과는 많이 다르다. 그같은 이유는 저자의 하나님과 내 하나님이 달라서라기보다는 저자의 창이 나의 창보다 작은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면에서 내가 보는 성삼위관을 저자에게 리뷰로 남겨야 할듯하다. 물론 저자가 군문에 있는관계로 이글을 읽을날이 언제쯤일런지는 모르겠다.


먼저 성삼위에 대한 이해는 기독론 즉 그리스도가 하나님이시란 이해부터가 근본이 된다. 그렇다고 하여 그리스도만으로 하나님을 전부이해할수는 없다. 그렇기에 저자가 서술했던 방식대로 창세기의 하나님부터 신약시대의 하나님까지를 줄곧 관통해서 만나야한다. 성경안에서.


우선 예수님을 정의한 구절을 보면 임마누엘이라 했고 기묘자라 모사라 했다. 이 세단어를 정확하게 이해한다면 적어도 삼위일체론의 절반이상은 풀려진다. 임마누엘은 역사적의미에서 이스라엘을 떠난 하나님이 다시 이스라엘과 함께하신다는 의미이기도하지만, 여인의 후손으로 오실 하나님이 우리세상에 함께 계신다는 말이기도하다. 즉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계실수없는 분이라는 전제와 우리와 함께하는 역사가 있다는 특이점을 말한다. 기묘자라는 말은 우리 인간에 눈에 예수님이 기묘하게 보이고 이해할수없게 될것이라는데 있다. 즉 하나님이 이땅에 함께 계심도 이해할수없지만, 아브라함으로부터 이어지는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의 하나님 즉 그들의 하나님이 다시 이땅에 계심 자체가 기묘(영존성과 함께) 하며 이해할수없음(영적속성에서 육신을 입고 오심)이 있다는 말이다. 모사라 함은 구원에 대한 기획, 의도라는 하나님의 섭리자체를 한단어로 보여준다.


즉 하나님이 우리와 같은 차원에 존재하시지않는데 옛약속(창세기의 여인후손을 통한 구원)을 이루기위해 오심 자체가 기묘자이며 하나님의 구원자체라는 사실이시다. 그걸 증명하는게 바로 변화산사건이다. 모세와 엘리야는 죽은자와 산자의 대표로 하나님(임마누엘이전의 하나님=인간의모습을 한 하나님)을 직면하여 본자들이다. 하나님의 본체 즉 하나님의 고차원성으로 이해 인간들은 하나님을 볼수도 대면하면 죄성때문에 죽을수밖에 없다. 그럼 그들이 만난자는 예수란 이름을 가지기전 하나님 즉 성자이시다. 그렇기에 그들이 살고 죽지않으며 그들을 데려가심도 예수로 이땅에 오신 하나님을 증인하고자는 섭리였다.

예수님을 성자라고 보는것은 좀 모순이다. 성자라는 말의 근원은 하나님의 아들이라 불리워질 것이라는 인간들에 눈에 비친 예수님의 속성일뿐이다. 예수그리스도는 하나님 자체이시며 임마누엘이실뿐이다. 그리고 그분의 격은 보혜사라고 스스로 말씀하셨다. 즉 인간을 보호하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렇게 예수님을 정의하고 창세기부터 읽어가면 우린 지금 우리가 처한 세상이 원래 하나님 즉 말씀하시는 하나님(성자)과 다른 세계 즉 타락후 추방에 따른 다른 세계임을 깨닫는다. 마치 옆집으로 간게 아니라 추방되어 더 낮은 차원으로 쫒겨가고 낮은 차원의 존재로 격하된것이다. 그걸 동의한다면 차원이라는 개념을 통해 하나님을 다시 보다 명확하게 이해할수있다. 영존하시는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계실수없다(이신성)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을 향하신 하나님의 의도는 창세기이후 이어지는 인간들의 역사속에서 하나님의 사자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사자가 천사와 다른점은 하나님과 동격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쓴다. 즉 나여호와가로 시작하는 말을 전달하는 자는 이세상에 이전에 있는 하나님의 사자이자 예수그리스도의 모형이다. 그분이 후에 인간의 육신을 입어 있다에 온것이다


하나님의 차원:    하나님 (고차원) 성부 성자 성령=> 한분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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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들의 차원:    하나님의 사자=예수님=성자 , 성령   <==  보혜사로 나타나시는 하나님


결국 인간들의 눈에 보였던 예수그리스도(성자). 역사하시는 성령 그리고 우리와는 같이 계실수없는 엄위하신하나님 세분으로 보일뿐이다. 즉 양태가 다른게 아니라 차원을 넘어서 오신 하나님이 우리눈과 머리에 다르게 보일뿐이다.


그런 차원의 이해를 위해 하나님의 차원을 낮출수없기에 우리가 사는 차원을 낮게 만들면 이해하기 쉽다. 즉 내가 그림을 그리면 그 그림은 내존재(3차원)보다 낮은 2차원이 된다. 그 그림속 존재가 나를 아는차원은 모호하고 기묘할수밖에 없다. 또한 내가 전능의 권능으로 그림을 고치거나 그림들에게 말하는것은 분명 나는 하나인데 그림속 주인공들에게는 두가지나 세가지쯤으로 보여질수밖에 없다.


결국 이러한 예화를 통해보면 불완전한 인간의 이성과 감각으로 하나님을 불완전하게 이해할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그렇다고 하나님을 보다 투명하게 가르치지않는것는 오류와 사이비로 나가게 만든다. 그 두가질 없애려면 성경을 바르게 가르치는 교사들이 많아져야한다. 물론 그이전에 삼위일체에 대한 보다 깊이있는 깨달음이 성경안에서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있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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