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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불친절한 콩씨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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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name><![CDATA[ cong21 ]]></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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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책 열권을 동시에 읽는 방법!!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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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name><![CDATA[ cong21 ]]></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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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text/html" mode="escaped"><![CDATA[ 책 열권을 동시에 읽으라고? 한권 읽기도 귀찮아 죽겠구만 열권을 언제다읽어? 이랬더랬다. 사실 난 책이란 그림이 가능한 많고 글씨는 거의 없는 책을 좋아라 한다. 만화책 위주로만 읽다 회사에서 독서토론으로 인해 읽게 된책이었다. 이책은. 28년동안 만화책만 읽은 나에게 신선한 충격 + 채찍질을 해준 책이라고 하겠다 그만큼 도움이 많이 된 책이었다. 저자는 책 열권을 동시에 읽는 법은 바로 초병렬 독서법이라고 한다. 초병렬 독서법이란 책 한권을 처음부터 끝까지 꼼꼼하게 읽는것이 아니라 이곳저곳에 쌓아두고 다양한 책을 동시에 섭렵하는 방식을 말한다. 저자는 거실,침실,화장실,부억 등 눈에 보이는 장소라는 장소에 무조건 책을 쌓아두어 수시로 책을 읽는다고 한다. 또한 한가지 장르에만 속하지 않고 다양한. 특히 서로 다른 주제와 다른 장르를 같이 읽는것도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그렇게 하면 아무리 관심이 없는 부분도 책을 통해 그런 분야를 접하게 됨으로써 예기치 않은 쌈빡한 아이디어나 혁신적인 생각이 떠오를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책은 사실 저자 본인 위주로 돌아가는 내용이 많았지만 굉장히 나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어쩔수없이 책을 읽어야 되는 상황이라면 가능한 글씨없는 에세이나 시집 연예인이 낸책등. 이런책들만 고집하다 보니 별로 주위 사람과의 대화 거리도 없고, 회사생활에서의 번뜩이는 아이디어도 없었고, 좀 많은 반성을 하게되었다. 이책에도 나왔듯이 독서를 일종의 놀이로 생각하라 한다. 책을 읽게되면 나는 어느새 돈안들이고 세계 이곳저곳을 여행할 수 도있고 책속의 여주인공이 되었다가 모두들 부러워하는 연예인으로도 변해서 만인의 부러움을 누리고 등등 이 얼마나 자유롭고 즐거운 일일수 있겠는가~!! 마지막으로 저자는 나이대별로 도서를 몇권 추천해주고 있다 특히 20대를 2년 남겨 놓고 있는 나에게 20대는 특히 스케일이 큰 책을 읽으라고 권했다. ㅋㅋ 스케일이 큰 책이라면 역사.인문.문화 이런 것들 아닌가? 정말 정말 제일 싫어하는게 역사 책인데 말이다. 그래도 이책은 나를 크게 자극을 해서 그런지 추천해준 책들에 호기심이 발동하게 되어 읽고싶어졌다. 인생에 있어 피가 되고 살이되는 것은 정말 책읽기가 아닌가 싶다. 저자가 권해준 초병렬 독서법이나 서로 다른 장르의 도서들. 스케일이 큰책들. 골고루 읽으면서 나의 20대를 알차게 마무리 짓고 30대를 멋지게 시작하고 싶다!!  ]]></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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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서비스 달인이 되기위해!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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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name><![CDATA[ cong21 ]]></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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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text/html" mode="escaped"><![CDATA[ 교보문고를 10년을 다니면서 나는 나름대로 고객에게 최선을 다한 서비시를 제공했다고 생각했다. 고객센터에 근무를 하면서는 고객 클레임에 대한 대처를 완벽하게 소화했다고했고 교보문고 분당점 내에서 근무를 하면서는 나름 밝고 친절하게 소화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책을 읽으면서 나는 10년동안 너무 '고객 서비스'에 대한 것에 너무 안일한 생각을 하지않았을까라는 것을 느껴본다.. 서비스만 잘하면돼, 혹은 이 상황만 넘기면돼 이런 것들? 이 책은 단순히 서비스만 잘하라고 명시하지 않고 고객 서비스에 대한 정확한 구분과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이책에서 가장 공감되고 배워야 할점이 있다면 첫째. 감성서비스로 고객을 열광시켜라. '감성' 이란 단어는 생판 모르는 남에게 표현하기는 참으로 어렵다. 하지만 그만큼. 고객을 내가족.내애인.내친구 처럼 생각을 하고 고객이 정말 필요로 하고 원하는 것,우리에게 요구하는 니즈를 계속 적으로 끊임없이 생각하고 표출 하면 그게 바로 고객을 웃게 하는 감성서비의 원동력이 된다고 한다. 둘째. 전설적인 서비스를 만들어라. 교보문고 내에서 전설적인 서비스를 만들어 낸 선배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사실 정말 대단하고 놀라운 내용은 그닥 많이 있진 않다. 하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부분보다 고객들은 정말 사소한것 하나 하나 직원들의 태도에서 대단한 감동을 받으며 친절 서비스를 받게 되는것 같다. 어르신들을 부축한다거나 책에 비어 살짝 피가나는데 대일밴드 하나를 건넨다거나 구매한 책이 없어져 쓰레기통을 뒤져서 찾아낸다거나(이건 좀 대단하다고 생각함) 등등. 조금은 사소하고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부분을 고객들은 감동한다는 것이다. 이점에서 느낀점은 단순히 서비스만 한다고 생각할게 아니라 고객 한분 한분을 진심어린 서비스. 진실된 서비스를 해야하며 이 상황만 마무리 져야 된다는 생각을 버리고 무엇이 필요한지 어떻게 하면 좀더 다양한 서비스를 할수있을지 고민하고 더 많은 정보를 얻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마 이책을 통해 나는 좀 변할것 같다. 다양한 서비스를 위한 아이디어가 머릿속에서뱅뱅 도는 기분이다. 왠지 흥이나고 일을 더 즐길수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흐흐흐- 조금 내용이 빡빡하고 지루하긴 했지만 역시 책을 읽기 전과 읽은 후는 확실히 차이가 있다. 서비스를 하는 회사라면. 서비스를 하는 직원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책^^  ]]></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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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기욤 뮈소]구해줘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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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name><![CDATA[ cong21 ]]></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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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ssued><![CDATA[ 2009-10-22T22:02:45+09:00 ]]></issued>
        <summary type="text/html" mode="escaped"><![CDATA[ 김연수의 청춘의 문장들과 함께 김훈의 자전거 기행을 함께 선택해서 구입하였다. 청춘의 문장들을 읽고나서, 자전거 기행을 세 장째 읽어가는데, 문득 이 분의 문체가 힘겨웠다. 한 문장, 한 문장에 너무 절감한 나머지 화가 나기 시작한 나는 남은 수 만개의 문장에 이토록 절감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생각만으로도 버거웠다. 그 날의 나는 삶에 대한 쓸데없는 걱정과 우려들에게 모든 에너지를 빼앗겨 있었기 때문에 힘겹게 절감해야 하는 김훈의 문체에 에너지를 소진할 여력이 없었다. 그래서 바꿔 든 책이 기욤 뮈소의 구해줘이다. 첫 시작은 배우를 꿈꾸는 서른을 바라보는 프랑스 여인과 아내를 잃은 의사의 불같은 사랑으로 시작된다. 연애 소설이구나, 했다. 오랜만에 연애소설을 읽으니 기분이 말랑말랑해져서 힘이 솟았다. 그런데, 그렇게 연애소설의 뚜껑을 열었다고 생각한 순간,그 안에 또다른 뚜껑덮개가 있는 듯 전혀 다른 사건이 전개되기 시작한다. 아, 우연으로 인한 사고구나. 우연에 대한 사랑 이야기구나, 했다. 하지만,다시 뚜껑을 열어도, 또 뚜껑이 나오고, 그 뚜껑을 열면, 또 다른 색의 뚜껑이 나오는 상자처럼 기욤 뮈소의 소설은 끊임없이 한 사건에서 다른 사건으로, 또 다른 사건으로 이야기를 확장시켜 나갔다. 뚜껑을 열고, 또 열고, 또 열고.... 그렇게 상자의 비밀을 알기 위해 안간힘을 쓰다가 종국에는 마지막 가장 작은 상자의 바닥이 맨처름 상자의 바닥과 같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의 기분이랄까. 그래서, 이 책은 한 번 잡으면 앉은 자리에서 읽히는 책이다. 기욤 뮈소는 프랑스 출신의 젊은 작가이다. 하지만 구해줘의배경은 프랑스가 아닌 미국의 뉴욕이다. 이야기의 구성 또한 마치 헐리우드의 블록버스터를 보는 듯한 느낌을 불러 일으킨다. 하지만, 주인공 여성이 성공을 위해 프랑스를 떠나 뉴욕에서 꾸역꾸역 살아나가는 것처럼, 그렇게 이 소설은 헐리우드스러운 구성에서 이질적인 프랑스적 소재로 다른 향신료를 첨가한다. 자국의 문화에 깊은 자긍심을 느끼는 프랑스인일지라도, 젊은 세대는 역시 미국의 문화에 익숙하고 그렇게 프랑스의 젊은 작가는 이야기의 흐름을 미국식으로 전개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하지만, 프랑스의 요리가 그렇듯, 와인이 그렇듯, 에피타이져의 정성스러움과 와인의 향기처럼 이야기의 소소한 소재들은 프랑스식으로 꾸며 놓았다. 기욤 뮈소는 그래서, 국제적인 소설가가 되었다. 그의 영악스러움이 부러웠던, 꽤 재미있는 소설이다. ]]></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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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오랜만에 만난 풍부한 사유의 여행기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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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name><![CDATA[ cong21 ]]></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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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text/html" mode="escaped"><![CDATA[ 나의 신이여, 내가 형편없는 인간이 아니며 내가 경멸하는 자들보다 못하지 않다는 것을 나 자신에게 증명해줄 아름다운 시 몇 편을 쓰도록 은총을 내려주소서. - 보들레르, 『파리의 우울』어쩌면 이 책은 작가 자신이 스스로를 증명하기 위해 기나긴 미술관 여행을 감내하며 기록한 일기일지도 모르겠습니다.1990년대 중반의 서부유럽 미술관 탐방이라는, 브루주아적인 우아한 여행기이건만,흔히 품어져나오는 자기 자랑식의 시건방진 여행기들과는 다른 어떤 처절함이 배어 있달까요.가만 보면, 1960년대에 태어난 한국인들은, 그것도 자신들이 지식인 계층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은 문장 문장마다 이념과 현실의 괴리감에서 파생되는 패배의식이 비직비직 새어나오는 듯 합니다.1961년 생인, 어두운 현대사의 터널을 지나온 최영미의 글도, 그것도 미술관에서 바라보는 그림에 대한 감상기를 다룬 이 작은 기록에서조차도 그런 느낌이 한껏 묻어있습니다.렘브란트의 퀼른 자화상을 바라보며콜비츠의 독일의 아이들은 굶주린다를 바라보며미켈란젤로의 론다니니의 피에타와 로댕의 키스를 바라보며우리는 그림 자체가 아니라, 작가의 눈과 가슴을 통과한 색다른 그림의 의미를 만날 수 있습니다.고야의 인형놀이, 클렝의 무제 (I.K.B.) 브뤼겔의 이카로스의 추락 베이컨의 습작들, 그리고 들라크르와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까지 이어지는 사유의 글들은 화려한 미술관에 걸린 액자를 벗어나 무궁무진한 상상의 세계로 인도합니다.1997년에 발행된, 무려 12년 전에 썼을 작가의 그림을 통한 자기 고뇌는 여전히 독자 개개인들에게 유효하기도 합니다.지금보다 더욱 심각한 시대정신이 느껴지는 작가의 감정적인 문체가 부담스러울 수 있지만해외 여행이 대중화 된 요즘의 수많은 여행서적 안에서도이만한 여행기록을 만나기 어려운게 사실이니까요. 순전히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렘브란트를 사랑한다면, 서유럽의 사치스러운 미술관을 동경한다면,그리고... 그림을 사유한다는 것에 대해 체험하고 싶다면 추천하는 책입니다. 어둡고 음습한 런던에서 시작해 이탈리아를 경유, 세 번의 파리에서 마치는 이 책을 통해 건조하고 삭막한 가슴안에 뜨거운 무언가가 불쑥 올라오는 경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어쩌면 이 책을 덮은 이후에 미술관을 찾고 싶어질지도 모르죠. 짙은 코발트 빛의 클렝의 블루가 표지장식을 하고 있는 시대의 우울, 과연 시대의 우울에서 벗어날 수 있는 세상은 올 수 있을까요. ]]></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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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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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name><![CDATA[ cong21 ]]></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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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text/html" mode="escaped"><![CDATA[ 세 명을 살인한 사형수 윤수와, 세 번의 자살을 시도한 유정. 그리고 상처받은 이들의 어머니, 모니카 수녀님. 나의 삶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 분명 현실 어디엔가는 그들과 같은 상처를 가진 사람들이 수도 없이 많을텐데,- 이들의 상처가 그저 책속 인물이라는 것에 겨우 겨우 위안을 삼으며, 그들의 상처에 울렁거리는 가슴을 붙들고 읽어내려가다가, 윤수와 유정이 서로를 거울 보듯 바라보며 내면의 상처를 타인에 의해 위로 받고 치유받는 과정들을 보면서, 나 또한 똑같은 거울로 이들과 마주 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들이 아팠을 때, 나도 아팠고 그들이 분노했을 때, 나도 똑같이 분노가 느껴졌다. 그들이 조소할 때, 나도 같은 사물을 향해 조롱을 했다. 그러다가,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는 이들을 보며 나 또한 용서하지 못하는 나를 발견했다. 나를 용서하지 못해서, 사랑하지 못해서... 세상 그 어느것도 사랑할 수 없는 숨겨진 나를 보았다. 쪼글쪼글 몸과 마음이 늙을데로 늙은 윤수의 손에 죽어나간 피해여성의 어머니가 윤수를 용서했을 때. 윤수는 자신을 용서할 수 있었고, 그것을 직접 보던 유정도 '용서'를 경험할 수 있었다. 윤수의 사형집행일을 기다리는 1년 6개월여동안, 윤수는 신앙을 가지게 된다. 그러면서, 유정과 모니카 수녀님, 피해여성의 어머니께 자신이 감옥에서 만든 십자가를 선물한다. 나는 십자가 역시 처형의 도구라는 것을 그때 처음 깨달았다. 십자가형, 로마가 극악한 식민지 백셩들을 다스리기 위해 고안해낸 그 형벌. ...(중략) 예수도 사형수였으니까. 그러니 만일 예수가 교수형을 당했다면 이천 년 동안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동그란 밧줄을 목에 걸고 다니고 동그란 밧줄을 교회 지붕에 올렸을 것이며 목이 대롱대롱 매달린 예수의 형상을 교회에 걸어 놓았을 것이었다. 나는 갑자기 예수가 그렇게 사형수로 처형된 것이 고마웠다. 그렇지 않다면 누가 윤수를, 감히 위로할 수가 있었겠는가. 밤이 새도록 책 한권을 붙들고 있었던 새벽에서 아침으로 넘어오는 시간에, 나는 갑자기 예수가 그렇게 사형수로 처형된 것이 고마웠다. 그렇지 않다면 누가 윤수를, 감히 위로할 수가 있었겠는가. 에서 그만 울고 말았다. 이십년을 기독교인이라고 살아왔건만, 찬송과 목걸이, 교회탑에 뾰족이 올라간 십자가를 수백번, 수천번도 보아 왔건만, 심지어 이 블로그 메인에도 떡~하니 십자가를 걸어놓았건만, 이렇게도 절절하고, 가슴 깊이, "왜" 예수님이 사형수로 십자가에서 그 고통을 겪으며 돌아가셨는지를 처음으로, 정말 처음으로 가슴으로 느끼는 내가 부끄럽고, 부끄러웠다. 내가 겨우 이걸 가슴으로 깨달을 수 있는 때가 이십대를 한참 보내고 난 오늘이었나 보다. ]]></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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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입속의 검은잎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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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name><![CDATA[ cong21 ]]></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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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text/html" mode="escaped"><![CDATA[ 시를 보며 오장육부가 물에 젖은 솜이불마냥 묵직해지고, 두 눈에서 눈물을 쏙 빼낸적은 그때가 처음이었던 것 같다. 스무살때였나... 선배의 차 뒷트렁크에 던져진 시집 한권 불쑥 집어들고 그냥 펼쳐본 그 곳에 바로 이 시가 있었다. 엄마 걱정 열무 삼십 단을 이고 시장에 간 우리 엄마 안 오시네, 해는 시든 지 오래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 안 오시네, 배추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안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 금간 창 틈으로 고요히 빗소리 빈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 아주 먼 옛날 지금도 내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 학창시절 교과서에 실린 김춘수의 꽃같은 시에서 가슴이 저린 적은 있었지만, 시 때문에 엉엉 운 것은 내게 진정 충격적인 경험일 수 밖에 없었다. 그러구 아마도 한달음에 달려가 기형도씨의 시집 입 속의 검은잎과 수필집을 샀던 것 같다. 해는 시든 지 오래,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천천히 숙제를 한다. 숙제를 다 하기전에, 아무 할일이 없기 전에 부디 엄마가 와 주기를. 삶의 고단함에 좋은 신발도 신지 못했을 엄마의 발자국 소리. 배추잎 같은 발소리. 어둡고 무서운데 비까지 온다. 그래서 빈 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는 소년. 아주 먼 옛날 지금도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유년의 윗목. 그의 시들은 가난으로 인해 떨쳐버릴 수 없는 삶의 고통과 사랑의 고통, 그리고 인간으로써의 고통이 그득그득 담겨 있지만, 그는 고통 그 자체를 표현한다기 보다는 "고통의 지난 일"을 "기억속의 그리움 또는 추억"으로 형상화 하고 있다. 그런 글을 쓰고 있는 제 삶의 고통이 채 끝나지 않았음에도. 그래서, 끔찍하게 가난한 그들의 시는 아름답다. 기억하는 지난 일을 그는 추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리운 지난 일이라고 노래하고 있기 때문이다. 눈시울이 뜨거워 지는 유년의 윗목이라 하더라도, 그 차가운 유년은 가슴 속의 뜨거운 어떤 것을 끌어올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의 시들은 시대성이 짙고, 개인적 경험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어떤 면에선 '고전'이라 일컬어 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보다 더 예민한 삶의 성찰력은 그 어떤 고전보다 뛰어나다. 그는 가난하고 고통스러운 삶을 지고서도, 그 가난한 삶을 외면하지 않고 똑바로 마주하며 노래했다. 그래서 그의 시들은 그리도 생생하고 컬러풀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는 일찍 죽었다. 새벽의 심야극장 안에서. 그의 시들은 그의 이른 죽음과 함께, 예술이 되었다. 어쩌면, 예술이라는 것은 인간의 삶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글이건 그림이건 노래건 춤이건.. 그것은 인간의 삶을 담아내는 수단이고, 결국 그 수단을 예술로 만들어내는 것은 한 인간의 삶이 아닐까.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대체 마음이 가난한 것이 무엇인지 가늠이 되지 않을 때가 있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이 어떻게 행복할 수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었다. 어렴풋이... 아주 어렴풋이 알 것 같기도 하다. 마음이 가난하다면, 아마도 먼지같은 미물에도 기쁠 수 있겠지. 마음이 가난하다면, 매끼 먹는 흰밥도 맛있게 먹을 수 있겠지. 마음이 가난하다면... 배추잎같은 어머니의 발자국 소리 하나에도 온전히 기쁠 수 있겠지. 마음이 가난한 자들이 남긴 몫들과 함께, 나 또한 마음이 가난한 자로 살고 싶다. 나에게 주신 이 순간을, 현재가 주는 행복을 함부로 놓치지않고 살뜰히 챙기고 사는 마음이 가난한 자가. ]]></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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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파리에서 달까지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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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name><![CDATA[ cong21 ]]></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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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text/html" mode="escaped"><![CDATA[ 시를 보며 오장육부가 물에 젖은 솜이불마냥 묵직해지고, 두 눈에서 눈물을 쏙 빼낸적은 그때가 처음이었던 것 같다. 스무살때였나... 선배의 차 뒷트렁크에 던져진 시집 한권 불쑥 집어들고 그냥 펼쳐본 그 곳에 바로 이 시가 있었다. 엄마 걱정 열무 삼십 단을 이고 시장에 간 우리 엄마 안 오시네, 해는 시든 지 오래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 안 오시네, 배추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안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 금간 창 틈으로 고요히 빗소리 빈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 아주 먼 옛날 지금도 내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 학창시절 교과서에 실린 김춘수의 꽃같은 시에서 가슴이 저린 적은 있었지만, 시 때문에 엉엉 운 것은 내게 진정 충격적인 경험일 수 밖에 없었다. 그러구 아마도 한달음에 달려가 기형도씨의 시집 입 속의 검은잎과 수필집을 샀던 것 같다. 해는 시든 지 오래,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천천히 숙제를 한다. 숙제를 다 하기전에, 아무 할일이 없기 전에 부디 엄마가 와 주기를. 삶의 고단함에 좋은 신발도 신지 못했을 엄마의 발자국 소리. 배추잎 같은 발소리. 어둡고 무서운데 비까지 온다. 그래서 빈 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는 소년. 아주 먼 옛날 지금도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유년의 윗목. 그의 시들은 가난으로 인해 떨쳐버릴 수 없는 삶의 고통과 사랑의 고통, 그리고 인간으로써의 고통이 그득그득 담겨 있지만, 그는 고통 그 자체를 표현한다기 보다는 "고통의 지난 일"을 "기억속의 그리움 또는 추억"으로 형상화 하고 있다. 그런 글을 쓰고 있는 제 삶의 고통이 채 끝나지 않았음에도. 그래서, 끔찍하게 가난한 그들의 시는 아름답다. 기억하는 지난 일을 그는 추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리운 지난 일이라고 노래하고 있기 때문이다. 눈시울이 뜨거워 지는 유년의 윗목이라 하더라도, 그 차가운 유년은 가슴 속의 뜨거운 어떤 것을 끌어올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의 시들은 시대성이 짙고, 개인적 경험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어떤 면에선 '고전'이라 일컬어 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보다 더 예민한 삶의 성찰력은 그 어떤 고전보다 뛰어나다. 그는 가난하고 고통스러운 삶을 지고서도, 그 가난한 삶을 외면하지 않고 똑바로 마주하며 노래했다. 그래서 그의 시들은 그리도 생생하고 컬러풀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는 일찍 죽었다. 새벽의 심야극장 안에서. 그의 시들은 그의 이른 죽음과 함께, 예술이 되었다. 어쩌면, 예술이라는 것은 인간의 삶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글이건 그림이건 노래건 춤이건.. 그것은 인간의 삶을 담아내는 수단이고, 결국 그 수단을 예술로 만들어내는 것은 한 인간의 삶이 아닐까.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대체 마음이 가난한 것이 무엇인지 가늠이 되지 않을 때가 있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이 어떻게 행복할 수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었다. 어렴풋이... 아주 어렴풋이 알 것 같기도 하다. 마음이 가난하다면, 아마도 먼지같은 미물에도 기쁠 수 있겠지. 마음이 가난하다면, 매끼 먹는 흰밥도 맛있게 먹을 수 있겠지. 마음이 가난하다면... 배추잎같은 어머니의 발자국 소리 하나에도 온전히 기쁠 수 있겠지. 마음이 가난한 자들이 남긴 몫들과 함께, 나 또한 마음이 가난한 자로 살고 싶다. 나에게 주신 이 순간을, 현재가 주는 행복을 함부로 놓치지않고 살뜰히 챙기고 사는 마음이 가난한 자가.  ]]></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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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파리에서 달까지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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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name><![CDATA[ cong21 ]]></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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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text/html" mode="escaped"><![CDATA[ 파리에서 달까지는친구가 읽던 책의 표지가 기억에 남아서 무심코 집어든 책이었는데, 무려 버스에서도 낄낄대면서 보다가 좀 무안했던 책이다. 여행기라기 보다는, 체류기?에 더 가까운 이 책은 작가의 양적 질적으로 좋은 가정 환경, 난체 하는 지식인 특유의 재수없는 어투들이 종종 거슬렸지만, 파리에서기껏? 5년을 살고도이런 기똥찬(!) 표현력들로 책을 내어놓을 정도이면 조금 더 재수없는 표현들이 난무해도 기꺼히 감사하며 읽어 드.릴.수. 있는 그런 기분이랄까. 문장 문장마다이해할 수도 없는철학적 예시를 예시랍시고 가져다 붙여놓은 글들은 나의 값싼 지적허영심을 살살 얼래주고, 팩스 기기 하나에도 파리시민의 성향을 드러내는 작가의 확대적 시각은 항상 '번역'의 낯설음을 극복하지 못하고 늘 한국작가의 책들만 집어들었던 나의 답답한 버릇을 한방에 날려보내 주었다. 대체, 머리 노랗고 파란 눈을 가진 자들의 시각은 왜 이다지도 쿨하고 신선하단 말이냐! 미국인이 겪는 유럽문화, 그것도 우아하고 고고하다는 프랑스의 중심지 '파리'에서 겪는 에피소드는 문화적 충돌과 그 충돌 속에서 극복해 나아가는, 문화를 이해하고 발견해 나아가는 사고에 대하여 마치 직접 겪어나아가는 것처럼 확연하게 즐길 수 있다. 여행과 체류의 사이, 이방인으로서의 삶과 거주자로서의 삶의 사이에서 유쾌하게 풀어낸 작가의 문장력을 따라가노라면 틀림없이 이 좁은 곳에서 아웅다웅 하며 사는 우리들의 좁은 시각을 발견하고, 마치 모든 일들이 별것이 아닌 것처럼 느껴질 것이다.  ]]></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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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적의 화장법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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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name><![CDATA[ cong21 ]]></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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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text/html" mode="escaped"><![CDATA[ 숨 넘어갈듯 빠르게 진행되는 제롬 앙귀스트와 텍스토르 텍셀의 대화에 투명망토를 걸치고 그들의 사이에 끼어들어 몰래 엿듣다가, 대화의 실체는 결국 제롬도 아니고 텍스토르도 아닌 바로 내가 이 책의 주인공이되어 있는 모습에 놀라는 꼴이란. 이 책의 주인공인 "나"가 된다는 불쾌한 경험. 그런데, 그것이 역설적이게도 이 책이 나에게 던진 쾌감이다. 영화 밀양도 말하듯, "나"라는 존재는 나에게 가장 절친한 "타자"이다. 그 친절하고, 따뜻한 "나"라는 타인은, 무의식중에 끓어오르는 욕망과 더러운 욕정을 가진 또다른 "나"를 부정하고, 외면한다. 그리고, 잊는다. 하지만, 애써 잊으려 하는 자제심은 어느 순간 내게로 와 더욱 큰 폭발력으로 터져 버릴 것이다. 밀양의 신애가 자살을 시도했던 것처럼, 그리고 이 책의 제롬 앙귀스트가 결국 텍스토르 텍셀을 죽음으로 몰고 갔던 것처럼. 아멜리 노통브의 소설을누군가 내게권해줬던 때는 아마... 2년 전일 것이다. 사랑의 파괴라는 책을 던져 줬었는데, 3분의 1도 읽지 않고 그만 두었던 기억이 난다. 그녀의 문체는 유난히 시니컬하고, 뜨악스러웠다고나 할까. 그것이 어린아이의 시선으로 표현되어진다는 것에서 적잖이 기분이 안좋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여전히 공격적인 문체를 고수하고 있는, 인문학적으로도 철학적으로도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작가의 이기적이리만큼 박학한 표현들이 거침없이 쏟아지는 대화체들을 읽어내려가며, 나는 2년 전과는 다른 기분을 느껴버리고 말았다. 그것은, 죄책감인 것 같다. 내가 인정하고 싶지 않은, 혹은 나라고 보여지고 있는 자아가 차마 알지 못하는 심연의 "악한 자아"가 내 안에 꿈틀대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느껴버렸기 때문이다. 그것은, 이 책을 통해 적나라하게 나에게 들켜버렸고, 보이지 않는 이 사실은, 정말 사실이었다. 내가 모르는 나, 내가 어쩔 수 없는 나, 내가 혐오하는 나는 이렇게 시시때때로 나를 군림하고 있다. 그것은 나의 의도대로, 혹은 나도 모르게 표출해 버리고 만다. 오랜 시간동안 내안에 숨겨진 나를 잊어버리다가, 스스로 목숨 끊는 엽기적인 행각을 치루기 전에, 부디 제어할 수 없는 "적"의 행동에 심한 죄책감을 가지며 살아가길. 여전히 죄책감에 울렁이는 가슴을 억누르고, 이렇게 자아비판을 책속에 묻어 해본다. ]]></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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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현의 노래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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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name><![CDATA[ cong21 ]]></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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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text/html" mode="escaped"><![CDATA[ 마음이 복잡하고, 정신이 혼미했다. 며칠 사이, 세상은 마치 약속이나 한 것처럼 벌떡 일어나 나를 두렵게 했고, 무섭게 했다. 날씨조차도, 미치광이같은 세상의 아우성에 놀아나는 듯 어두웠고 음습했다. 우울했다. 하지만, 이 책이 나를 위로한다. 시각적 감각에 젖어들 대로 젖어, 후각적이고 공감각적인 표현력에 멀미가 날 지경인데도, 작가의 단단하고 서늘한 시선이 날 위로한다. 바람소리처럼 물소리처럼, 쇠의 흐름과 나라의 쇠퇴와 왕의 죽음을 맞는 우륵의 마음이... 나를 위로한다. 조금 더 잔잔해질 필요가 있다. 나는 여전히 동요하기 쉽고, 애가 타기 쉽고, 서럽기 쉬운 나이이지만, 조금씩 잔잔한 마음을 키워 나가고 싶다. 김훈의 글은 마음의 멀미를 일으키는 문체이다. 그래서 그 울렁거림에 도저히 버스 안에서는 읽혀지지가 않는다. 그의 문장은 마치 감정이 배어있지 않는것 같은데, 읽는 이로 하여금 한없이 마음에 파도를 일으키고 동요케 한다. 일렁이는 속도는 책장을 넘길 수록 더욱더 심해지고, 쉽게 넘어가지 않던 초반과는 달리 한 번 쥔 책의 후반을 한꺼번에 읽게끔 만드는 힘은 아마도 이 울렁증 때문일 것이다. 중심조차 잡고 있기 힘들만큼, 내게 뿌리가 있다면 그 뿌리채를 잡고 흔드는 듯한 김훈의 글은 그래서 한번 잡히면 쉽게 놓여지지가 않는다. 그리고, 작가의 다음 작품을 나도 모르게 기다리게 된다.  ]]></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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